'희생의 시스템'을 넘어서
< 오키나와에 사랑을 담아 > From Okinawa with Love 스나이리 히로시 SUNAIRI Hiroshi︱2023︱102min︱Japan, United States︱15세
‘현재 일본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진작가 중 한 명.’ 이시카와 마오에 대한 소개다. 20대 초반, 이시카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기지촌으로 들어갔다. 이후로 40년간, 그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오키나와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면서 오키나와의 식민성과 글로컬(Glocal)한 군사주의의 문제를 다뤄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렸다. 그건 기지촌 여성과 흑인 병사들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었다.
오키나와는 ‘기지의 섬’이라 불린다. 일본 내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고, 그 면적은 오키나와 본섬의 20%에 달한다. 옥빛의 바다와 스노클링, 다양한 먹거리 상품 등으로 유명하지만, 그 ‘천혜의 자연’은 1879년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강제 병합하면서 시작된 피의 역사 위에 서 있다. 오키나와는 제국주의 일본의 첫 식민지였다.
식민지 오키나와에서는 수탈과 착취는 물론 류큐 문화와 류큐인에 대한 극심한 혐오와 차별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은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한 병참 기지로 오키나와를 선택한다. 곧 태평양 전쟁 중 최대 사망자를 낸 오키나와전이 발발한다. 이 전투에서 사망한 일본군 9만 명 가운데 3만 명이 오키나와인이었고, 민간인은 약 9만 명이 희생됐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민간인이 사망한 원인은 다름 아닌 집단 자결이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 포로가 되면 극심한 치욕과 고통을 당할 것이라며, 그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세뇌했다. 내부 정보나 자원이 미군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학교 교장이나 교사 등 지역 지도층 주도로 집단 자결이 행해졌다. 사람들은 동굴 같은 곳에 숨어들어 서로 목을 베거나 수류탄을 터트렸다. 오키나와 곳곳에 ‘집단 자결지’가 남아 있고, 여전히 땅을 파면 희생자들의 유골이 발견된다. 현재 일본 극우는 (위안소 운영과 강제 동원뿐 아니라) 집단 자결의 역사 역시 부정하고 있다.
오키나와인들은 야마토 일본에 동화되기 위해 애썼지만, 일본 정부는 그들을 일본인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오키나와를 세계대전의 사활을 건 접전지로 내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은 명백한 패전을 앞두고 오키나와를 대가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천황제를 지키고자 했다. 이에 더해 패전 후에는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겨 버린다. 미군정의 시작이었다.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를 가리켜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희생의 시스템에선 누군가의 ‘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이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
오키나와는 여전히 이 시스템의 중심에 있다.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할 때, 그 조건은 미군기지의 존속이었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반복되었고, 미군에 의한 교통사고나 헬기 추락사고 등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은 위협받아 왔다. 그들이 여전히 미군기지에 반대하며 반전·평화운동을 이어 가는 것은 이것이 생명과 존엄의 문제이자, 근대 일본이 뿌리박고 있는 폭력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기 때문이다.
이 고통의 섬에서, 바로 이 고통을 말하기 위해, 이시카와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랑과 우정을 찍었다. 그는 다큐의 감독인 스나이리 히로시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한 장씩 넘겨 보며 기지촌 여성들이 얼마나 활기 있었는지, 흑인 병사 “톰, 지미, 스미스”가 얼마나 개성 있는 남자들이었는지 증언한다. 그러므로 사랑이었다. 이시카와는 흑인 병사를 사랑하는 일이 왜 나쁘냐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것과 미군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일이라고. 그럴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이시카와가 기지촌의 삶에서 또 다른 희생의 시스템을 목격했기 때문일 터다.
기지촌 여성을 멸시해 그들의 위안 노동을 별스러운 것으로 배제하고 은폐함으로써 ‘정상성’을 유지하는 희생의 시스템, 인종차별에 기대어 백인 중심적인 군사주의를 떠받치는 희생의 시스템. 이시카와는 필름 위에 빛을 쌓아 기지촌 여성들과 흑인 병사들의 형상을 빚어냈듯이 젠더와 인종, 계급이 중첩된 억압의 구조 속에서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곱다, 곱다” 어루만진다. 그렇게 세계가 원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납작하게 뭉개진 이미지들에 개별적 서사를 덧대어 숨을 불어넣는 것이다.
스나이리는 이시카와의 역사적인 작업들을 경쾌한 리듬으로 엮어내는데, 이때 활용되는 레트로한 감성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적인 것으로 되살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시카와의 작업을 타고 1970년대를 여행하던 스나이리의 카메라는 지금/여기에서의 이시카와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감각적으로 이어진다. 이시카와의 카메라가 그랬듯이, 스나이리의 카메라 역시 이시카와의 시간을 품어 토닥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큐의 끝에 이르러 이시카와의 철학과 온전히 만나게 된다. “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의 인생, 나는 사람이 좋다.”
손희정(프로젝트38,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