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 학살이 본격화된 이래, 한국에는 여러 팔레스타인 작가의 책이 소개되었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 출판사 리시올/플레이타임, 서제인과 안팎(박종주) 같은 헌신적인 번역가들이 한국어로 옮긴 글들이 쉼 없이 공개되었다. 이스라엘에 의해 국제 언론이 장악되고 오염된 가운데, 또 현장에서 가자의 소식을 전하던 수많은 언론인이 표적 살해당한 중에도, 우리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쉬지 않고 보내는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얼굴들에서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이라는 부제를 단 앤솔러지 시집 『응답의 시』를 기획한 것은 우리의 응답이, 팔레스타인의 부름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 진은영부터 계미현, 한영원,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까지, 오랜 시간 많은 작품을 발표해온 한국의 대표 시인들부터 등단한 지 몇 해 안 된 시인들, 그리고 문단이라는 테두리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안팎의 시인들까지 47인**이 청탁에 응해, 오직 팔레스타인을 위한/향한 시를 써주었다.
그런데 응답이라니, 온 세계가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집단 학살을 멈추지 않는데, 시로 뭘 하는 게 가당한가. 이런 의심이 들 만도 한데 시인들은 썼다. “‘써야만 한다’와 ‘쓸 수 없다’ 사이에서 혼자 시달리면서”(김혜순), “참담한 마음으로 보잘것없는 한 편의 시를 건네”(나희덕)기로 하며, “유리병 편지처럼 바다 위를 표류하다가 어느 해변에 닿을 것”(김소연)이라 믿으며, “한 곳에서 승인된 폭력은 전염병처럼 모든 것에 옮겨가니까”(진은영), “감히 작은 희망을 품어보며”(오은), “그럼에도 목소리는 조용히 멀리 퍼져 나간다고 주장”(유현아)하며, “완결되지 않은 마음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하고 싶어서”(임솔아), “우리의 시들이 실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안태운) …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이들이 2026년 봄여름 한국에서 동 시기에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를 썼다는 것.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들이 뭐라도 시작해야 뭐라도 가능해진다. 이 지면을 통해 처음 밝히자면 『응답의 시』가 아랍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전쟁이라는 비극과 집단 학살이라는 참상 앞에서 시와 영화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희덕 시인과 김소연 시인이 언급한 뒤로, 언제 어떻게 닿을지도 모르고 띄운 유리병 편지를 떠올린다. 팔레스타인 시인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에 나오는 꼬리가 긴 흰 연을 『응답의 시』 표지에 그려 넣은 뒤로, 하늘의 연을 생각한다. 해초와 조나단 승준 리와 김동현이 가자로 향하는 배를 탄 뒤로, 아름답게 장식한 돛을 단 배를 상상한다. 항해자들이 이스라엘군에 납치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가자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다에 있을 땐 내일이면 닿는 거리에 가자지구가 있었다 우리들이 탔던 배는 부서졌는데 그 파편이 가자지구와 레바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배는 열일곱 살에 살해당한 리나 알 나불시 그사이에도 아이들은 죽는다 더 큰 시간 속에서 분명 조그만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도착한다여기 그러니까 가자로***
부서진 배가 가자지구와 레바논에 도착했다. 그렇게 수없이 도착하자. “여기 그러니까 가자로.”
* 모함메드 엘쿠르드, 『완벽한 피해자』, 박종주 옮김, 마티, 2026, 14-15쪽.
** 김혜순 나희덕 김소연 김숨 신해욱 진은영 송경동 오은 강성은 유현아 서효인 임경섭 김현 박소란 지현아 송승언 임승유 김영미 임솔아 안태운 권창섭 한연희 희음 윤은성 배시은 장혜령 나하늘 강상헌 박은지 권누리 정재율 한여진 김리윤 김선오 송정원 윤유나 장미도 임유영 박규현 하미나 계미현 한영원 이새해 맹재범 이실비 이혜목 해초(김아현).
*** 해초, 「여기 그리고 저기」, 『응답의 시』, 얼굴들, 2026, 186-187쪽.
강소영(얼굴들 대표)
영화 기획·마케팅 일을 하다가 출판편집자로 전업한 23년 차 콘텐츠 제조·서비스 노동자. 출판사 마티, 후마니타스, 위즈덤하우스 등에서 일했고, 현재 북살롱 겸 출판사 ‘얼굴들’을 운영하고 있다.